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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황희와 맹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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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육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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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는 목적은 철종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김좌근의 소실(小室)로 희떱고 마구발방 날뛰는 나합 량(羅閤 梁)씨와 유사한 인사 때문에 시끌벅적하니, 이럴 때일수록 청백리(淸白吏)인 방촌과 고불의 양심적인 삶이 어느 때 보다도 머리에 엉켜, 필자의 도서는 대학에 많이 비치하니, 장차 나라를 이끌 젊은 학생들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황·맹 두 정승을 본받으면, 역사에 빛나는 인물로 길이 남는다는 것을 깊이 가슴에 묻어주기 위하여 평전(評傳)해 보기로 합니다. 사실 태종과 세종이 왜 황희나 맹사성 같은 청백리를 계속 중용하였을까? 특히 반대세력을 끌어안지 않은 왕은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은 정적 양녕대군의 사람인 황희를 우리 역사상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시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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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차례
1. 맹사성의 출생
2. 영락제의 진헌녀(進獻女) 엽색(獵色)으로 고통 받는 태종을 돕는 맹사성과 황희
3. 생살지권(生殺之權)을 쥔 태종으로부터 죽음 직전에 구출된 맹사성
4. 향교에서 종살이 하는 맹사성
5. 서울 선비를 등에 업어서 내(川)를 건네준 맹정승(孟政丞)
6. 젊은 선비의 물음에 시 맛을 전혀 모른다고 말하는 맹사성
7. 맹사성의 ‘공당’ 문답
8. 예악의 정비에 앞장선 맹사성
9. 소를 타고 진위현(振威縣) 장호원(長好院)을 지나가는 맹정승
10. 오리골과 맹정승 이야기
11. 애일당 이천석의 두 큰 스승 허조와 맹사성
12. 바쁜 꿀벌은 효성(孝誠)할 틈도 없다
13.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실린 세종 조 재상(相臣) 맹사성(孟思誠)
14. 외유내강(外柔內剛) 즉 허술해 보여도 강직(剛直)한 맹사성의 성격
15. 재상 맹사성이 소 대신 시월의 낙엽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다
16. 맹사성 고택
17. 황희의 출생
18. 황희가 출생하던 시기의 내우외환(內憂外患)
19. 두문동(杜門洞)에서 빠져 나온 황희
20. 음행녀(淫行女)를 능지처참(陵遲處斬)에서 거열형(車裂刑)으로 낮추는 황희
21. 수달피 이불을 선물(膳物)한 종성부사(鍾城府使)를 파면시킨 황희 정승
22. 양녕대군의 복수를 우려해 황희는 폐 세자를 반대 한다
23. 세자 교체를 반대하다가 양녕대군 보다 먼저 쫓겨난 황희
24. 아침 일찍이 아들에게 큰 절하는 황희 정승
25. 청백리의 상징 황희의 눈물
26.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유유정승(唯唯政丞) 황희
27. 하인의 자손(子孫)에게 뺨을 맞는 황희
28. 세종이 군국의 주요 건력(勸力)이외는 선위(禪位)를 주장하자 반대하는 황희
29. 황희 정승을 사소한 일로 끊을 수 없다는 세종
30. 작은 기와집에 멍석 깔고 사는 황희 정승
31.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실린 세종 조 상신(相臣;재상) 황희(黃喜)
32. 90년의 아득한 세월이 새봄의 노을 속으로 지다
33. 황희의 예상대로 세종에게 복수하는 양녕대군
34. 황희(黃喜)의 현손(玄孫)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이 왜란이 일어난다고 치계(馳啟)하다
35. 황희의 5세손 황진(黃進)이 승전한 이치전투(梨峙戰鬪)
36. 황희에 이어 비새는 초가에서 사는 오리정승(梧里政丞)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철종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김좌근의 소실(小室)로 희떱고 마구발방 날뛰는 나합 량(羅閤 梁)씨와 유사한 인사 때문에 시끌벅적하니, 이럴 때일수록 청백리(淸白吏)인 방촌과 고불의 양심적인 삶이 어느 때 보다도 머리에 엉켜, 필자의 도서는 대학에 많이 비치하니, 장차 나라를 이끌 젊은 학생들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황·맹 두 정승을 본받으면, 역사에 빛나는 인물로 길이 남는다는 것을 깊이 가슴에 묻어주기 위하여 평전(評傳)해 보기로 합니다.
사실 태종과 세종이 왜 황희나 맹사성 같은 청백리를 계속 중용하였을까? 특히 반대세력을 끌어안지 않은 왕은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은 정적 양녕대군의 사람인 황희를 우리 역사상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시없는 18년이나 영의정으로 몸에 품고 살았다. 특히 영특한 세종이 청백리를 중용한 목적은 간단하다. 도둑놈과 손을 잡고 도둑질을 없앨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속담에 개에게 메주 멍석을 지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큰 파도는 훌륭한 항해사를 만든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들은 그 무서운 생살지권(生殺之權)을 지닌 살인마 태종에게도 원칙(原則)과 소신(所信)을 굽히지 않다가 사형 선고, 참기 힘든 고문, 유배, 또는 노비로까지 신분이 전락(轉落) 되면서,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더니, 조선조 500년의 가장 큰 두 거성(巨星)으로 우뚝 서 우리 한민족의 뼈 속에 전설 같은 청백리로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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