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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황희와 맹사성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철종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김좌근의 소실(小室)로 희떱고 마구발방 날뛰는 나합 량(羅閤 梁)씨와 유사한 인사 때문에 시끌벅적하니, 이럴 때일수록 청백리(淸白吏)인 방촌과 고불의 양심적인 삶이 어느 때 보다도 머리에 엉켜, 필자의 도서는 대학에 많이 비치하니, 장차 나라를 이끌 젊은 학생들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황·맹 두 정승을 본받으면, 역사에 빛나는 인물로 길이 남는다는 것을 깊이 가슴에 묻어주기 위하여 평전(評傳)해 보기로 합니다. 사실 태종과 세종이 왜 황희나 맹사성 같은 청백리를 계속 중용하였을까? 특히 반대세력을 끌어안지 않은 왕은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은 정적 양녕대군의 사람인 황희를 우리 역사상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시없는 ..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철종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김좌근의 소실(小室)로 희떱고 마구발방 날뛰는 나합 량(羅閤 梁)씨와 유사한 인사 때문에 시끌벅적하니, 이럴 때일수록 청백리(淸白吏)인 방촌과 고불의 양심적인 삶이 어느 때 보다도 머리에 엉켜, 필자의 도서는 대학에 많이 비치하니, 장차 나라를 이끌 젊은 학생들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황·맹 두 정승을 본받으면, 역사에 빛나는 인물로 길이 남는다는 것을 깊이 가슴에 묻어주기 위하여 평전(評傳)해 보기로 합니다.
사실 태종과 세종이 왜 황희나 맹사성 같은 청백리를 계속 중용하였을까? 특히 반대세력을 끌어안지 않은 왕은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은 정적 양녕대군의 사람인 황희를 우리 역사상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시없는 18년이나 영의정으로 몸에 품고 살았다. 특히 영특한 세종이 청백리를 중용한 목적은 간단하다. 도둑놈과 손을 잡고 도둑질을 없앨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속담에 개에게 메주 멍석을 지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큰 파도는 훌륭한 항해사를 만든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들은 그 무서운 생살지권(生殺之權)을 지닌 살인마 태종에게도 원칙(原則)과 소신(所信)을 굽히지 않다가 사형 선고, 참기 힘든 고문, 유배, 또는 노비로까지 신분이 전락(轉落) 되면서,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더니, 조선조 500년의 가장 큰 두 거성(巨星)으로 우뚝 서 우리 한민족의 뼈 속에 전설 같은 청백리로 새겨졌다.
주요저서;
읽을거리만 뽑은 연산군일기
조공녀 기황후
백성을 하늘로 본 정도전
난세를 슬기롭게 극복한 류성룡
태종 이방원
폭군이야기 상권
폭군이야기 하권
대원군과 명성황의 도전과 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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